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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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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8-06-1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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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체의 본성이 무능하거나 서투르기 때문에 선인들과 악인들에게 아무 구별 없이 똑같이 선과 악이 주어지게 하는 과오를 저지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유명한 ??명상록??(Meditations)은 전선의 진중에서 쓴 것으로, 그 안에는 스토아 철학자의 명상과 황제의 격무라는 모순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위대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격조 높은 필치로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따 이 책에 나타난 그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에픽테토스의 影響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한층 더 성숙하고 인간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따 그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것은 불로서 신적인 세계영혼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이성)도 세계영혼의 한 유출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죽은 뒤에는 자연스레 세계영혼으로 귀일하게 된다
물질적ㆍ육체적인 세계의 모든 것은 이 신적인 혼에 의해 운명적ㆍ자연적ㆍ필연적ㆍ합법칙적으로 끊임없이 생성소멸하고 있으므로, 개개의 사물이나 인간은 그 필연의 운동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 자연의 이법(= 신의 섭리)을 확인하고, 외적인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 없이 주어진 운명을 감수하며 내적으로 자유롭고 명랑하고 조용하고 경건하게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황제로 즉위했을 때 로마제국은 경제적ㆍ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명상록(마르쿠스_아우렐리우스)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사라져 버리는가! 우주에서는 육신들이, 시간에서는 육신들에 대한 기억이! 감각적인 모든 것, 특히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하거나 고통으로 겁주거나 허영으로 부풀어 오른 것들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철…(drop) 학자로서의 자아와 황제의 업무는 별개의 것이었지만, 이는 격무에 시달리던 그가 철학적 명상에서 안식을 찾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신들이 너를 불행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일것이다 신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신들이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면, 신들이 없는, 또는 섭리가 없는 우주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신들은 존재하고, 그들은 인간사에 관심이 있따 그리고 신들은 인간에게 진정한 악에 빠지지 않을 능력을 주었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싸구려고 경멸스럽고 더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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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인용문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그리스어 원전1)으로부터 직접 번역한 ??명상록??(천병희 옮김, 숲, 2005)에서 골라 뽑은 것이다.


제2권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신들이 존재한다면 사람들 곁을 떠난다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닐것이다. 그밖에 또 다른 악이 있다면,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도록 신들은 거기에 대상으로하여도 미리 대비해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과 삶, 명성과 불명예, 고통과 쾌락, 부와 가난, 이 모든 것은 선인들에게도 악인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며 (그 자체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인간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전체의 본성2)이 무지하기 때문에, 또는 알기는 하지만 미리 대비하거나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간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명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 ~ 180): 로마제국의 황제. 5현제(賢帝) 중 마지막 황제로, 후기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공정하고 현명한 통치자로서 이러한 위기에 대처했지만, 결국 평생 동안 야만족과의 전쟁에 시달리다가 도나우 강변의 최전선에서 병으로 죽었고, 그의 사후 로마제국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황제의 양자가 된 뒤 140년 로마의 집정관(Consul)이 되었고, 145년 안토니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161년에는 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닐것이다. ,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기타레포트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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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나우강 연안 등 변방에서는 야만족의 침입이 잦았으며, 제국 안에서는 페스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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